라때만 해도 5월 한낮 반팔 입은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벌써 한낮에 반팔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고 신기하기는 커녕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어린아이들은 지금의 날씨에 적응되어 가겠지만 지병이 있으신 어르신들은 길어진 여름이 더욱더 힘드실 것이다.. 벌써부터 한여름의 산책을 걱정하며 공원에 다다랐다..
전에 늘 가던 축구장은 이제 이곳의 게이트볼장 으로 바뀌었다... 강지들은 인조잔디를 매우 좋아한다.. 이제 몇번뵈었던 강지 어머니와 간단히 인사하고 강지들은 놀다 지쳤을때쯤 내가 앉은 벤치 옆 벤치에 성별을 모르겠는 어느 노인분 께서 신문지를 깔고 힘없이 앉으셨다..
요즘에 보기 힘들게 깡 마르셨고 숏컷트에 백발, 마스크를 하고 계셨던 어르신은 일부러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주위를 둘러 보지 않으셨다.. 그저 앉아서 강지들을 힘없이 쳐다보셨다...
나는 이내 그분이 할머님 이라는걸 알았고 신경이 쓰여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되었다... 뭔가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마스크위 어르신의 눈을 보았다.. 어떤 삶을 사셨기에 저리도 초점이 없으신 채로 멍하니 앉아 계시는 걸까....
강지어머니가 가시고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몰라도 어르신께 용기내어 말했다..
"어르신 목 마르시면 물 드실래요?"
강지가 목마를까봐 나와 다른 강지어머니는 강지들에게 물을 맥이기 위해 애를 썼다.. 지쳐보이는 어르신에게 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건내 보았지만 나는 이내 내가 실수했다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르신은 당황하신듯 바로 대답을 못하시고 머뭇거리셨다.. 나도 남이 주는 음료나 물은 함부로 마시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르신께 권해 드린게 실례인것 같았다..
집에가서 드신다 라고 말씀 하시고는 어느새 대화를 이어갔다.. 그전과 다르게 오늘 좀 말끔하게 입어서 그런가? 괜한 오지랖이 생겨났다.. 어르신의 사연이 뜬금 궁금했다...
공원에서 초면인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강지를 키우고 산책을 하면서 처음본 사람들과도 말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당연히 여든이 넘으실거라 생각했는데 77세 밖에 안됐다라는 말씀에 놀랐다.. 원래는 건강하셨는데 5년전 큰 수술을 받으시고 갑자기 입맛이 하나도 없으신데다 신장투석도 받고 계신다고 하셨다.. 엄마 생각이 났다..
"저희 엄마도 어깨 수술을 세번 하셨는데 입맛이 없으시다고 하세요.."
"그래애~!수술하면 입맛부터 떨어져.. 근데 그걸 어느 자식이 알아줘? !!!" 갑자기 힘을 주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나는 자식의 입장을 대변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식들도 부모마음 다 아는데 겉으로 표현을 못해서 그런걸꺼예요... 저도 그래요.."
어르신은 그말이 조금 친근하다고 여기셨는지 이내 딸 하고 같이 사는데 딸이 자기 자식만 챙기고, 남들만 지극히 챙기는데 부모는 굶든 말든 신경도 안쓴다며 따님을 디스 하시기 시작했다...
손자가 밥을 안먹으니 과일만 맥인다며 일곱가지의 과일이 있고 밥은 주로 다 배달 시켜서 먹는다...고 하셨다..
"요즘 거의 다 그렇게 먹어요.." 라며 당연히 어르신의 성에도 안찰 말을 했다..
어르신은 원래도 음식을 가리시는데 배달음식은 정말 입에 안맞는다고 하소연 하셨다.. ㅠㅠ
그렇게 따님 디스, 음식 이야기, 살아오신 이야기, 수술 이야기, 세상사 등 해서 어느새 거의 두시간을 빈틈없이 꽉 채웠다..
자꾸 이게 아닌데 라며 중간에 끊을틈을 찾았지만 터진 이야기 보따리를 주워 담기는 어려웠다…
강지도 자꾸 내가 자기한테 집중 안하고 어른신과 이야기를 하니까 괜히 찡찡 거리다 안아주니까 잠들랑 말랑 하였다..
나는 절대 먼저 일어날수 없었다.. 어르신 이기도 했지만 그 대화가 나름 의미있었기 때문이다..
꽤 객관적인 피붙이 판단, 수술과정과 후유증, 원래 인천분이신데 5년째 타지살이에대한 우울증, 설움, 옛날 음식 이야기, 추억회상, 시집살이, 사회판단등...
상상조차 할수없는 가난과 고생의 끝이 위암수술로 마무리 된것 같다며 그 허무함과 공허함을 내게 말 하시는데 들어야 할것 같았다..
예전엔 먹을것이 없어 배곯았는데 이제는 속에서 받질 않아 못드신다고 세상이 참 변해도 너무 변했다며 앞으로는 세상이 더 안좋아 질 것이라며 걱정섞인 목소리로 말씀 하셨다...
그냥 듣고 있으면 되는데 나는 어르신의 말에 극히 공감한다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내 생각을 그대로 얘기 해 버렸다..
"그래서 저는 제가 딱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너무 옛날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고..."
"..." ??
키는 나보다 조금더 크신데 몸무게는 겨우 37키로 셨다..
어르신 본인은이 성격이 외골수라 자식들과 불화도 많으시다고 했다.. 수술로 인해 인천에 사시다가 거의 반강제로 짐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셨다고 했다..
타지살이에 대한 외로움과 낯설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도 중3때 전남으로 내려왔지만 아직도 이곳이 낯설다...
지금 따님댁에 있는것을 마치 남의 집에 사는것 처럼 말씀 하시는걸 보니 그때 얼마나 서로 힘들었을지 느껴졌다..
다행히 지금집은 방이 네개나 있는 평수넓은 고급 아파트 였다.. 나는 그래서....
"집이 크니 남남 처럼 사시는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라며 고삐풀린 말을 해버렸지만 어르신도 그러고 싶다고 하시지만 눈에 다보이고 들리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쓰냐고 하셨다….
그래 다 남의 얘기는 하기 쉽지....
과거 어르신은 가을만 되면 무시래기를 많이 말려두었다가 무쳐도 드시고 국도 끓여 드신다고 했다...
거기에 매운고추 끝을 따서 식초, 간장, 매실액에 재워두면 나중에 매운기가 싹 빠지고 시래기국 끓일때 넣으면 고깃국 보다 더 맛있다고 하셨다.. 그 고추가 밥도둑 이라며 그게 그렇게 드시고 싶다고 하시며 침을 삼키셨다..
매실도 직접따서 담아야 했으므로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지만 지금은 그 맛을 어디서도 찾을수 없다는 말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르신은 몸이 많이 쇠약해진 탓에 몸의 자유뿐 아니라 마음의 자유도 저당 잡히신 듯 했다.. 따로 나가 살고 싶지만 또 그럴수도 없다고 하셨다...
안그래도 끼니만 떼우면 무조건 나와서 이리저리 걸으신다는 어르신이 다행이면서도 걱정 되었다.. 몸이 안좋으셔서 그렇지 삶의 의지는 상당하신것 같으셨다..
청춘이 아까우시다며 돈주고 살수 있다면 돈 주고라도 사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만 눈치없게 거기서...
"저는 지금이 좋아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라고 얼토당토 않은 말을 시전했다...
어르신은 돈주고도 못살 건강에 대해 얘기하신건데 나는 딴소리를 해댔다...
그러고보니 한시간이 넘어갈즈음 부터 나는 멍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조금씩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어르신이 앉아 계셨던 벤치에 다른분이 오셔서 어르신은 내가 앉은 벤치로 오셨다.. 그리곤 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르신을 보며 인간의 삶이 얼마나 가엾고 한없이 비참한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덧 다음에 보면 다시 이야기 나눌것을 약속한후 서로 감사하단 인사로 악수를 나누며 그렇게 헤어졌다...
앞으로 그 공원에서 자주 뵙고 싶은 마음 이었다...
어르신이 지금처럼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잠시 산책후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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