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나의 첫직장.. (이지만 거즘 마지막..)

ㄱ~ㅎ 2025. 2. 24. 22:25

2006년도 11월 3일인지 6일 인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날은 엄청 추웠었다.. 눈비가 날리고 바람도 거세었다..
그곳은 기차역에서 100미터 정도 더 걸어들어가야 하는 좀 외진곳에 위치한 공장이다.. 버스를타고 기차역 근처에서 내리니  어딘지 모르고 헤메인데다 너무 추워서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갈까 했던 기억이 난다. 허름한 공장앞에 딸린 작은 사무실이었는데 그곳에 젊은 부부가 나를 맞이했다..나와 얘기한건 여자분이셨다..
 
가까이서 보니 예쁘시기도 했지만 매우 고우셨다..이것저것 얘기하다 그 분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공장 특성상 오전 8시 출근에 6시 퇴근이지만 토요일도 오후 5시까지 있어야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일단 해보기로 약속하고 11월 9일 첫출근을 하였다... 
 
급여는 세전이었는지 세후였는지 백만원정도 였다.. 독하게 마음먹었고 겨우겨우 오전 8시까지 출근을 했다.. 
그곳은 실공장이었는데 이미 사무실에 많은양의 실들이 진열되어(방문하시는 분들을 위한) 있었고 창가앞에 책상 두개가 전부였다.. 책상은 옛날 철(쇠?)로된 책상이었다.. 그마저도 녹슬고 여기저기 스티커가 붙여진... 그리고 바로 내 뒤에는 cctv가 떡 하니 나를 비추고 있었다.. 알고보니 몇년전 일하시던 분이 돈을 횡령? 했던지라 그때부터 달았다고 한다.. 사무실에 cctv가 있는것이 나쁜것은 아니나 너무 내 뒤통수에 있어서 조금 그랬지만 그때는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나는 처음 그 두분이 부부인지 몰랐다.. 약간의 긴머리에 머리를 곱슬곱슬 파마하고 안경을낀 개성있는 남자분은 원래 사장님의 아드님이셨고 곱고 예쁘신 여자분은 그의 아내분이었다.. 
 
나는 언니라고 불렀는데 언니는 매우 상냥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항상 차분하게 나에게 일을 알려주시며 내 옆자리에서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아드님이 아버지의 도소매 사업도 맡아 할겸 쇼핑몰판매 준비중이셨고 그 옆에 아내분이 같이 나와 도와 주고 계셨다.. 나는 그 두분 덕에 다행히 버틸수 있었다.. 좋은 분들이기에 내가 살갑게 굴었던 부분도 있었고 나는 다행히 잘 적응해갔다.. 약을 먹으며 다녔기에 졸기도 했고 가끔 깜박 거리기도 했지만 버티려는 나를 특별히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그래서 나도 더 잘 하려고 애썼다.. 나는 실수를 많이 했지만 늘 웃으며 즐거웠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전화나 전산작업 이외에도 밖에서 포장만 전문으로 하시는 아저씨가 바쁘시면 같이 실을 찾아와 포장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전화가 오면 전화받으러 다시 사무실로 가야하고 간혹 손님이 오면 응대도 해야 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불합리적하다고 생각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가 실을 찾으러 가는 사이 전화를 사무실에 앉아계시던 분이 받지 않으셨던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화기를 무선으로 바꿔달라고도 해달라는둥 나는 이것저것 의견들을 제시했다... 왜 언니가 쉬운일이 아니라고 했는지 알것 같았다.. 실은 내가 한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운 호수도 있었다..
 
나는 결국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통증이 생기더니 점점 심해졌다.. 당연히 손가락을 안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오랜시간 지나도 호전되지 않아 결국 나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부목을 일, 이주 가량 대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잡을수 없게되자 왼손으로 잡았다. 다행히 현란하게 마우스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여서 할수있었고 하다보니 또 적응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오른엄지손가락을 쓰지 않으니 다행히도 손가락이 나았다.. 좀 힘들었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포장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내가 건강해서 안과 밖의 일을 다 하면 좋았겠지만 그럴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일의 효율을 위해 큰사장님 부부와 젊은 아들 사장님부부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신것 같았다.. 어느날 나한테 포장일은 돕지말고 사무실내에서 일만 하라고 하셨다..
이미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과도 얘기가 되신 모양이다.. 
 
다음해 2, 3월경 인터넷쇼핑몰이 오픈하면서 부터는 거의 밖에는 나갈수 없었다.. 다행히 주문이 쏟아졌고 도매와 소매 쇼핑몰까지 일들이 매우 많아졌다.. 그리고 같이 있을것 같았던 언니는 어느순간 나오지 않았다.. 만삭이라 아기를 낳아야 됐기 때문이다... 너무 아쉬었지만 다행히 일이 많아 금세 혼자에 익숙해 질수 있었다.. 
 
어느 토요일은 그만두고 싶을만큼 온몸이 아팠지만 집에와 티비를 보니 무한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예능에는 관심이 없다가 무한도전 무인도편을 보고 나는 엄청 웃었다... 그리고 힘을 얻었다.. (그땐 몰랐는데 젊었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했구나…)
 
나는 세탁기 없이 살아서 세탁기를 들여야 겠다라는 생각을 전혀 안하다가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에 손빨래를 몰아서 하다보니 몸이 진짜 천근만근 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세탁기를 사봤다.. 하지만 손빨래 하던 사람이 세탁기를 쓰는것이 영 찜찜 했지만 또 쓰다보니 빨래도 잘 되는것 같고 일단 몸이 편했다..
 
잠이 쏟아지는 통에 아침이면 독한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점심은 공장옆 사장님의 집에서 집밥을 먹었다.. 원래는 밥을먹고 점심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지만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꼭 쉬어야 할것같아 말씀드리면 또 이해해 주시고 점심시간은 쉬게 해주셨다... 나도 열심히 했지만 그런 내 의견들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신 사장님들이 계셔셔 나는 마음이 따뜻했다... 
 
그외에도 철로된 책상도 새책상(나무책상)으로 바꿔주셨고 실로 나열된 오래된 선반들도 새걸로 교체가 되었다.. 나는 그럴때 마다 좀더 좋은 환경이 되니 너무 신이 났다.. 
 
언니는 가끔 아이를 데려왔고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과도 잘 지냈었다.. 나는 매우 힘들었지만 그런 따뜻함으로 견딜수 있었다.. 큰사장님의 사모님은 사무실앞 작은 텃밭에 좋은흙을 깔으시고 이것저것 심으셨다..
특히 나를 위한 방울토마토를 심으셨는데 자라면 무조건 나만 먹을수 있는것 이었다... 그래서 어느새 자란 방울토마토를 나는 맛있게 먹을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일이 너무 많아지고 힘들어 그만둘수 밖에 없었다.. 도소매 쇼핑몰관련 전화를 백통이상 받았고 모든것들이 나를 거쳐가야 했기때문에 스트레스에 몸이 많이 아팠다.. 떠날때엔 말할수 없는 만감이 교차했다... 드디어 해방됐다라는 시원함과 정든곳과 사람들과의 이별, 슬픔이 컸다... 
 
처음 힘들었지만 그곳에서 버티면 버틸수록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때 나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너무 힘들었는데 나를 필요로 해주고 대우해주고 돈도 내힘으로 벌고..  그래서 병원에 다니며 약을 쪼개서 모으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라는 생각에 어느날 약이 모이면 그것을 먹고 죽으려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감에 쩔어서 든 생각이었고 그약통의 약은 조금씩 먹어서 다 없어졌다.. 결국 난 살고 싶었다..
 
다소 특이했지만 그래서 나와 더 잘 맞았던.. 그리고 가장 젊었던 내가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였던곳...
모든것들이 나에겐 큰의미로 다가오는 내 첫직장에서의 5년을 보내고 나는 그뒤로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