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큰 죄를 지었다...
98년도 10월말, 11월초쯤 인것 같다.. 그 일이 있고 당분간은 학교에 계속 다녔다..
무슨정신으로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그일로 나는 경기도에서 전라남도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엄마는 경기도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조금 나중에 오고 나먼저 작은아버지댁으로 가있었다...
학교를 나오며 그리고 기차를 타기위해 정든 육교를 올라가며 울던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시골로 안내려 오시고 서울 이모집으로 가신다고 하셨다..
이제 더이상 할머니의 잔소리를 안듣게 되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긴시간을 달려 작은아빠댁으로 갔다... 갑자기 나는 몇년만에 작은댁에 와서 사촌들과 며칠을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이미 전학갈 학교의 교복은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 서둘러 학교를 가야했나 싶지만 내가 남아서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학교라도 다녀야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댁에 너무 폐를 끼쳤다.. 죄송하고 부끄럽다..
실은 나는 내색을 안했지만(안했다고 생각했지만) 힘들었다... 어느날부터는 작은댁에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려고 나서는데 자꾸 헛구역질이나 구토를 했다...먹을때까진 이상이 없는데 먹고나서 나혼자 있게되면 그런다.
사촌들은 위로 오빠둘 나와동갑인 남동생 한명이었다..
그냥 아무 말없이 지냈다.
전학간 학교는 내가 경기도에서 다니던 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경기도에서는 학교교칙이 좀 엄격했다... 머리도 짧은 단발에 머리핀도 색있는건 안됐고 교복도 늘 단속했고 양말과 신발도 단속했었다.. 명찰도 늘 차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전학간 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교복안에 후드티를 입어도 됐었고 머리도 머리핀도 자유롭게 하고 다녔다.. 양말도 신발도 자유로웠다..
학생수도 적었다.. 경기도에선 10반정도였는데 이곳은 3반정도의 작은 학교였다..
학생수가 적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집 사정을 거의 다 알고 소문같은 것은 금방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려 했지만 잘 안됐다.
그저 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해 멀리까지 전학왔다라고 소문도 났다.
착하고 엉뚱하고 모르는척 그리고 활발한척 하기 딱이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무시당하는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중간이 없었다... 초4때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었던것, 초5때 지나치게 착한척 했던것, 중1때 과하게 내이미지를 꾸몄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나는 늘 오버액션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친구가 없었다... 친구가 없다는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중2때 같은반이었던 친구들이 중3이 되어서도 거의 같은반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래도 친구가 생겼다..
할머니가 안계시고 나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나는 더욱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오롯이 나에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했다.
내가 살던곳에 대한 그리움도 컸다... 엄마는 여기 사촌들과 의지하며 지내라고 했지만 그건 짧은 엄마의 생각이었다..
급하게 오느라 작은댁 가까이에 방한칸을 얻었다.. 그리고 엄마는 자주 나를 끌고 작은댁에 가려했다..
나는 작은댁에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꼭 선한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악마가 나쁜 기운을 갖고 가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작은댁은 기독교집안인 동시에 집안 분위기도 늘 밝고 활기찼다...
그런 기운에 우리의 악한 기운이 묻을까봐 작은엄마는 내심 신경쓰시는 눈치셨다...
내가 아는 작은엄마는 매우 착하고 좋으신 분이다.. 실제로도 그러시다… 하지만 내면이 아주 강하시고 신념이 확실하신분 이셨다. 늘 사촌들의 교우관계에도 매우 신경쓰셨다... "그애랑 가까이 하면안돼..."
그런애는 나같은 아이와도 같았다... 공부도 못하고 학교생활에 부적응적이었으니까... 괜히 작은댁에 가면 기가 죽어지고 행동도 부자연스럽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그런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사촌이기에 허물없이 지낼수 있다 생각하신것 같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게 제일 어렵다... 작은부모님께서는 물론 어린 자녀들에게 오빠얘기를 할순 없었겠지만은 적어도 우리집에 어떤 안좋은일이 있어 갑자기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것을 알고 있을것이다.
나는 작은댁을 따라 교회를 다니는 것이 싫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괜히 우리가 와서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명절이 되면 난 안간다고 때쓰고 엄마는 왜 안오냐고 화냈다. 할머니도 계셨고 아예안갈순 없었다..
명절에 작은댁에 있는데 작은엄마쪽 친척들이 오셨다... 갑자기 할머니가 나를 방으로 숨으라고 하셨다...
기분좋은것은 아니나 그런것들이 서운하진 않았다...
나중에는 손님이 오면 난 알아서 방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피하는게 더 편했다.
어느날 친구1에게서 손편지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읽어내려가는데 마음을 깊게 울린 한구절이 있었다... 땡땡아
"친구는 내 슬픔을 자기의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래."
난 친구1을 걱정하지 않았다.. 늘 씩씩하고 밝아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편지를 받아 보고선 나는 너가 힘들거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너도 힘들었을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난 친구1에게 엄청나게 빚을 졌다... 얼마전 친구1과 통화하는데 (연락하는 유일한 친구) 니가 그때 내 친구관계 다 끊어 놓고 가서 나 힘들었다... 그러더라... 난 그저 그랬었냐 할뿐 이었다...
너무 멀리있고 서로의 삶이 있어 연락도 자주 못하지만 난 친구1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 니가 힘든거 있으면 이젠 내가 다 받아줄께...
근데 이친구는 도무지 힘든내색을 안한다....
'과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껍데기 고딩시절, 친구2(학교강박) (0) | 2024.12.25 |
---|---|
마지막 집 그리고 첫 집(ft.바 바선생, ****) (0) | 2024.12.24 |
중1, 중2, 친구1 <내가 정해놓은 이미지로 보이려는 강박, 조울증> (3) | 2024.12.21 |
광기의 초4, 가면의 초5, 다놔버린 초6 (1) | 2024.12.16 |
유치원 그리고 초1, 2, 3 (2)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