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가족구성원 모두가 소통불가, 가난, 사진같이 찍힌 첫기억들

ㄱ~ㅎ 2024. 12. 6. 20:11

나는 1983년 전라남도 에서 태어났다.  셋째로 첫딸로 그리고 거꾸로(발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태어난지 거의 일년만에 출생신고가 됐다. 딸이었고 너무작아서 죽을것 같았단다.
그리고 내가 너무작아 엄마도 나도 무사할수 있었다고 했다. 동네에서 내별명이 들은대로 발음하면 '꼬꾼녜, 야문녜, 씽토라밀령이..' ? 라고들 하셨단다.
 
셋째이미만 큰오빠는 어릴적에 죽어 나태어날때는 안계셨고 집에는 증조부,모, 할머니, 아빠, 엄마가 계셨다고 한다. 
증조부모님은 아프시고 아빠는 술만 드셨고 엄마는 화만 내셨다고 한다. 그리고 집과 바깥의 일들은 당연히 엄마의 몫이었다 한다.
 
엄청난 가난속에 태어난 우리엄마는 딸넷있는 집에 셋째딸이었고 나처럼 철이 없으셨는데, 결혼 하시고 부터 (20대 초반) 잠을 잘수가 없다고 하셨다..   위로 두 이모들이 서울과 경기도에 살고 계셨는데 둘째이모가 경기도로 와서 돈벌고 살으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나는 애기때 경기도로 갔다.
 
처음부터 외할머니와 같이 가게 된것인지.. 아님 중간에 외할머니가 올라오신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아마 아빠의 건강이 안좋았고 엄마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는데 우리 때문에 외할머니를 올라오시라고 한것같다. 예전에 할머니가 우리들만 아니였어도 경기도로 올일은 없었다고 한번 말씀하시던게 기억난다.
 
그렇게 그곳에서의  첫집은 좁은골목길(양쪽으로도 집들이 있는) 그 안으로 더 들어가서 왼쪽이 검은문(아마 녹슨철문)을 열면 오른쪽 맨첫방 이었다. 그때 그렇듯 한지붕아래 두세 가구가 살고 있을때라서 우리식구 말고도 다른 가족들도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었다. 방한칸에 다락, 방문을 열고 나오면 나즈막한데 부엌이있는 집.. 빨래는 뒤안? 에서 공동으로 하던 그런집.. 그런 시절이었다. 엄마는 그집에서 두번정도뱀도 보셨다고 한다…

 
(((전남에서 나고 평생 자라신 외할머니와 부모님은 경기도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 오늘 아침에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모두 힘들었겠구나.. 전라도와 경기도의 생활이 다 가난했지만 지역차이라는게 있고 서로의 집을 참견할수 밖에 없었던 한지붕상황 에서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가슴아프게 서로가 불쌍하긴 했어도(정서적공감) 이해라는 논리의 감정(인지적공감)은 우리집식구들 누구에게도 없었다. 소통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으며 당연한 거였다.
 화가 잘났고(예민한 감각기관), 화도 잘냈고  누구하나 심기를 건들기만 하면 싸웠고 욕이 난무했었을 우리집... ...)))
 
그런데 내기억에는 싸우는 기억들은 없었다.  한번은 엄마가 술 취한 아빠를 밀치셨는지 힘없이 누워버린 장면이 사진처럼 남아있긴 하다…. ((이런 가정에선 대부분 어느누구 하나 아이들을 세상으로 이끌어줄만한  어른은 없으셨고 없었겠다.))
 
내가 그곳에 살면서 처음 느낀 가장 강한 감정은 억울과 공포 였을 거다. 어떤 할머니가 나를 괴롭혔다. 그 할머니는 나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말인지는 모르나 우리를 욕했었고, 특히 나한테 어떤 실수들을 뒤집어 씌우셨다.  물건이 없어지거나 무엇이 잘못되면 매번 나보고 그랬다고 했다. 한번은 너무 억울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무서웠었다. 되게 조그마한 할머니께서 내 옆에 딱 붙으셔서 머라머라 하셨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런데 할머니보다 더 공포스러운것은 잠드는것이었다. 나의 다른 블로그 아마추어체질이야기에서 어릴적가위눌림에 쓴게 있는데 이 집에 살았었던때에 엄청 심한 가위눌림에 시달렸다. 나는 정확한 환청도 한번 들었었다. 식구들과 반대방향으로 누웠는데(실제 반대로 누웠는지 모르겠다. 이불이 덮혀지지않은 느낌, 나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느낌)어떤 할머니가 내귀에 바짝 입을 대시고는 욕 하시면서 할머니 말씀을 잘들으라고 하셨었다. 얼어붙었고,, 그때 그 공포는 너무 비현실적이기도 해서 아무에게도 말 못했다.

그다음 감정은 부끄러움, 수치심 이었다. 나는 그래도 꽤 밝았었다. 골목에 있는 다른집 친구 둘이랑 잘 놀았던 기억이있다 어느날 친구와 놀고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와서 친구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으면서 이런말을 하셨다. 갑자기
 “쟤랑 놀지마라." 
처음느끼는 초라한 감정이다. 무슨뜻인지 모르겠지만 창피했다.
그때부터 그 친구와 친구의 엄마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나는 크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위한 집착과 강박이 생긴다.
 
즐거웠던 기억은 없고 공포나 부끄러움이 내가 기억하는 첫 감정들인데 나는 왜 그런것인가..? 정말 즐겁지 않았던가 아님 그런 감정을 먼저 느끼고 간직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사상체질에서 양인은 어두운감정(노여움, 화남)을 오래 간직하고 음인은 밝은감정(기쁨, 즐거움)을 오래 간직 한다고 했다.  ㅠㅠ
 
어느날 대문을 열었는데 땅에다가 누가 그림(여자모습)을 그려놨다. 처음 그림을 보았다..마치 사진처럼 뙁 기억에 남는데 그림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들여다 봤다. (그것은 그냥 누군가 땅에 그려놓은것) 그래서 나는 나중에 예쁜여자 그리는걸 굉장히 좋아했고 자주 그렸다.
 
그곳에서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의 기억은 딱 하나있다. 집이 아니라 바깥에 쓰러져 계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사온 과자를 먹느라 바쁠만큼 어렸던 나는 모든것들을 한장면 한장면 사진처럼 기억했다. 
생각해보면 가족들은 늘 표정이 굳어 있었고 집은 한기만 돌았다.
 
이모든것들이 아마 내가 두살에서 대여섯살까지의 일들이다. 기억의 순서와 오류가 있다. 나는 그집을 생각하면 참 곰팡이냄새가 많이나는것 같다.

나의 최초의 기억들이 있는곳…
엄마가 열심히 모아서 우리네가족(외할머니, 엄마, 오빠, 나)는 길건너에 독채전세로 이사를 가게된다....

우중충한 얘기 끝까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