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단 한번 흔쾌히 준비물을 허락 하셨던 엄마마마 (근데 이제 오빠의 실수를 곁들인, 유치원

ㄱ~ㅎ 2024. 12. 7. 20:41

강지의 실외배변 덕분에 아침에 꼭 한번씩 옥상으로 올라 가는데 싸래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얼마전 중부에 눈폭탄이 왔다고 했을때 이곳(남부지방)은 싸래기눈이와 내가 나갔을땐 이미 녹아 비처럼 바닥만 축축 했는데 올해 내가본 첫눈 이었다.
예쁘네~ ^^
 
늦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었다.. 콜라도 마셨다.. 다먹고 콜라를 남은 자장면에 때려부었다. 들고 일어서는데 그만 엎어버렷…..  이미  그릇이 내손에서 미끄러짐을  느끼던 순간...        ㅈ됐다 .... 
 
독채전세를 얻어 이사를 간 나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다. 어느날은 할머니 엄마 오빠 나 이렇게 앉아 웃고 있었다.
나는 매우 신이 나있었다. 모두 좋아하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들어가기전 필요한 준비물을 엄마가 오빠에게 사오게 했다..
그런데 오빠가 사온 준비물을 보고 나는 그만 모든것이 무너진듯이 울었다. 그 이 ..ㅇ ㅣ 유능 ㅜㅜ
 
오빠가 사온 스케치북과 실내화주머니는 '파란색' (남색을 곁들인) 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파랑은 남자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것이다
당연히 빨강이나 핑크가일거라 생각했는데 칙칙한 파랑(거즘남색) 을 보니 하늘이 무너졌다.
더군다나 로봇이 그려진 스케치북에는 손잡이 마저 없었다. ...손잡이가 없는걸 들고 다니면 없어보였다.
오빠는 쑥쓰러워 빨강색을 못샀다고 한다.
 
그뒤 어떻게 해결 봤는지 자세히 생각은 안나지만 아마 실내화주머니는 빨강계열의 색으로 바꿔왔고 차마 스케치북은 바꾸지 못했던 걸로 기억난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북을 닫아야 하는데 차마 닫지 못하고 어물쩡 하던게 생각난다. 그 뒤로는 잘 들고 다녔다.^^
 
오빠는 초딩시절 내내 쑥맥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엄마가 단한번도 준비물을 사준적이 없었단다.
그일로 선생님께 맞은적도 있단다..
초1때 샀던 네모가방(보통 저학년들이 많이메는가방)을 오빠는 6학년 까지 메고 다닌게 생각난다.
 
그것을 본 나는 절대 오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몰랐지만 전교생이 2천명이 되는 학교였다…

준비물을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랐다. 나는 오빠보다 훨씬 강하게 울고불고 매달리다 보니 어쩔땐 사주신적도 있으셨다...
하지만 나역시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 다니지 못했다. 그당시 3백원~5백원 정도는 샀다.
 
한번사면 음악시간 내내 2~3년을 쓰는 템버린세트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엄마한테 머리를 뜯겼다… (심하게 떼를쓰면 엄마는 가끔 내 멀끄덩을 잡으셨다. 하지만 그땐 머리가 짱짱해서 끄떡 없었다..)

나는 그당시 엄마가 서랍에 현금을 넣고 다니신다는걸  알고 있었다. 결국 이, 삼천원을  빼서 템버린세트를 샀다.
그때 엄마는 오빠가 훔쳐갔다고 생각했지만 곧 나라는게 밝혀져 놀라시던게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후로는 그래도 원할한 합의가 이루어졌던걸로 기억한다.(성숙한 방향으로.. 포기할것은 하고.)
 
엄마는 어릴때 육성회비(50원)가 없어 선생님께 맞고 창피해서 학교도 못다니셨다고 한다. 돈도 없었지만 전라남도에서 매우 어렵게 살아오신 엄마에게 학교에 관련된 모든것들 (학교와 소통하는 가정통신문이나 준비물)은 전혀 중요한게 아니었을거다.(모르셨기도 하고 여유도 없어서…)  안타깝게 이런 가정은 여전히 많다.

어쨋든 그래서 엄마한테 나는 욕심많고 유난스럽고 별난 딸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수가 많아 다양한 학생이 다녔을 거다. 나는 가난했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가난이 뭔지도 몰기 때문이다...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나는 반짝거리던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상에 같이 있고 싶었다. 
 
내가 내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던 만큼 나는 물질적으로 부족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고 감추려했다.
그런 나를 주변친구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라는것을 최근에야 생각하게 된것같다.

유치원때 나는 배우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은 엄마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엄마의 손이 전혀 닿지않는곳에 동떨어진 그런것들이 나와는 관련없어지는 혼란스러웠던 환경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만들어내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유치원 준비물 사건은 내 맘속에 따뜻하고 가슴아프게 남아있다.